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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군중심리 - 귀스타브 르 봉

by ReadingN 2025.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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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에게 환상을 품게 만드는 자는 그들의 주인이 되며, 군중을 각성시키려 드는 자는 그들의 희생양이 된다!

국가의 영혼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다면 개혁은 충분히 유용할 테지만, 그런 힘을 갖고 있는 것은 오직 시간뿐이다.

인간을 지배하는 사상, 감정, 관습 등은 모두 우리 내부에 있는 것들이다. 법과 제도는 우리 영혼의 발로이며, 그 요구들의 발현이다. 영혼의 소산인 법과 제도가 영혼을 바꿀 수는 없으리라.

우리의 모든 행위 속에서 매우 거대한 영역을 관할하는 무의식은 여전히 미지의 힘으로 작용한다. 그에 비해 이성은 아주 적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우리의 관측으로부터 도출된 결론은 대개 미숙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잘 보이는 현상들 뒤에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 다른 현상들이 있고, 또 그 뒤에는 어 쩌면 전혀 보이지 않는 현상들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낡아빠진 문명을 가차 없이 파괴하는 일은 지금까지 군중이 맡아온 가장 분명한 역할이었다.

군중의 심리를 깊이 관찰해보면 법률이나 제도 등은 그들의 충동적인 성향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군중은 자신들에게 제시된 것 이외에 어떠한 견해를 갖는 데 있어 매우 무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순전히 이론적인 공정성으로부터 파생된 규범들 은 그들을 이끌지 못하며, 오로지 그들의 집단의식 안에서 생성되는 인상들만이 그들을 유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만약 어떤 입법 자가 새로운 세제를 도입하기 원한다면 그는 이론적으로 가 장 정당한 것을 택해야 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실질적으로는 가장 부당한 것이 군중에게는 최상일 것이다. 별로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언뜻 봐서 가장 덜 무 거워 보이는 제도가 가장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간접세는 그토록 터무니없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군중에 의해 수용될 것이다
왜냐하면 매일같이 소비되는 물건들에 대해 몇 푼 안 되는 만큼 씩만 거둬지므로 군중들의 습관을 속박하지도, 그들을 동요시키지도 않기 때문이다.

군중을 구성하는 개인들 각각의 생활 방식, 직업, 성격, 혹은 지적 수준과는 상관없이 단지 그들이 군중에 속하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집합체 공동의 영혼을 지니게 되며, 이로 인해 그들은 개인으로 머물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군중을 형성하는 집성체 안에는 구성요소들의 합이나 평균치가 아닌 그것들의 결합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특성들이 존재한다. 화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예를 들어 염기와 산은 새로운 물질을 만들기 위하여 서로 섞이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물질은 그것을 구성하는데 사용된 요소들 각각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특 징을 지니게 된다.

격리된 개인에게는 없는 군중만의 특성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 군중 속 개인은 자신이 다수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치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힘을 지닌 것처럼 느끼게 되어, 혼자였다면 당연히 제어하였을 본능에 자신을 쉬이 내맡긴다. 또한 익명성은 인간의 방종을 저지하는 책임감을 완전 히 소멸시키기 때문에 군중 속 개인은 더욱 더 제멋대로 행동하 게 된다.

두 번째 요인으로 정신적 전염(contagion mentale)을 들 수 있다. 군중 안에서의 모든 감정과 행위에는 전염성이 있으며,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각자 사적 이익을 희생시킬 수 있을 정도로 그 위력은 막강하다. 독자적 개인에게서는 거의 발견할 수 없고 그의 본성에도 반하는, 반드시 군중에 속한 인간 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요인은 군중에 속한 개인들의 특성을 결정하며, 때때로 개인들 각자의 성질과는 완전히 반대되기도 한다. 이는 피암시성(Suggestibilite)으로서, 전염은 이것의 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심리적 군중에 속한 개인의 상태 역시 대략 이러하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지 못한다. 최면술에 걸린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특정한 능력들이 파괴되는 동시에 다른 능력들은 극단적 흥분 상태로 강화된다.

조직된 군중에 속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인간은 문명 의 사다리에서 몇 계단 내려오게 된다. 혼자서는 교양 있는 인간이었을 한 개인이 군중 속에서는 야만적이며, 본능적으로 변한다.

군중은 지적인 측면에서 개인보다 항상 열등하지만 감정 및 감정에 의해 유발되는 행위에 있어서는 상황에 따라 더 나을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군중이 조종당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아무리 중립적인 군중일지라도 그들은 대체로 뭔가를 기대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은근한 암시를 통해 그들에게서 어떤 행동을 이끌어내기는 쉽다.

군중을 이루는 이상 무식한 자든, 박식한 자든 통찰력 이 떨어지기는 매 한 가지다.

모든 역사서들은 그저 순수한 상상력의 산물로 여겨져야 한다. 잘못 관찰된 사실들에 설명을 곁들인 꾸며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군중을 현혹하고자 하는 웅변가는 과격한 주장 역시 서슴지 말아야 한다 과장하고 단언하며, 반복적으로 말하 면서 결코 논리 정연한 설명을 시도하지 않는 것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연설가들에게 익히 알려진 논증 방식이다.

군중 안에서 팽창되는 것은 오직 감정일 뿐, 그 어떤 경우에도 지성이 확장되지 않는다.

군중이 무의식에 이끌리며 거의 사유하지 않는다는 사 실에 안타까워하지 말자. 만약 그들이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목전 의 이익을 따졌다면 아마 지구상에서 그 어떤 문명도 발전하지 못 했을 것이며, 인류 역사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군중에게 암시된 그 어떤 사상이든 간에 아주 절대적이고 단순한 형태로 포장되지 않고서는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따라서 그것들은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교육받은 사람은 현저한 명증 앞에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금세 자신의 무의 식에 이끌려 원시적 관념들로 되돌아갈 테고, 며칠 후면 다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표현들을 사용해가며 예전의 주장을 반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감정'으로 변화하여 굳게 자리잡은 사상의 지배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가장 위대한 통치자들은 절대적 독재 군주를 포함하여 대중의 상상력을 권력의 기반으로 삼았으며, 결코 그것에 반하여 국가를 다스리지 않았다.

나폴 레옹은 국가위원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 스스로 가톨릭 행세를 하며 방대 전쟁(La gueme de Vendee, 1793-1796, 프랑스 혁명기 국민공회의 국민 총동원령에 반대하여 가톨 릭을 신봉하던 방 지방 농민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혁명운동 및 내전 - 역주)을 치렀고, 이집트에서는 무슬림 노릇을 하면서 내 위 상을 굳혔으며, 교황권 지상주의자인 척 하면서 이탈리아 사제들의 환심을 샀다. 만약 내가 유대 민족을 통치한다면 여호와의 신전을 세울 것이다."

군중의 상상력을 후려치는 모든 것은 하나같이 충격적이고 선명한 이미지의 형태를 띠는데, 이는 몇몇 신비스런 사건 - 위대한 승리, 놀라운 기적, 중대한 죄, 커다란 희망 등 -을 곁들이는 것 외에 일체의 부수적 설명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무엇이든 단 번에 보여줘야 하며 그 유래를 밝히지 말아야 한다.

군중의 상상력을 건드리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분류되고 소개되는 방식이다.

이성과의 부단한 전투에서 감정은 단 한 번도 패한 적 없다.

한 민족은 과거에 의해 형성된 유기체다.

제도는 사상과 감정과 관습의 소산이며, 이 사상과 감정과 관습은 법률을 개정함으로써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중은 그들의 본질적 특성에 의해 지배된다. 그것에 딱 들어맞게 재단되지 않은 모든 제도들은 그저 빌려 입은 옷이요, 일시적인 변장일 뿐이다.

우려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교과서를 암기하면서 지성을 계발할 수 있다는 식의 근본적인 심리학적 오류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교부터 박사 과정 혹은 교수 자격시험을 치를 때까지 가능한 한 더 많이 암기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여온 젊은이가 하는 일이란 자신의 판단이나 자주성을 훈련해보지도 못한 채 오로지 책을 외우는 것뿐이다. 그에게 교육이란 암송하고 복종하는 데 있다.

쓸 데가 마땅찮은 지식의 습득은 인간을 폭도로 변하게 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판단력, 경험, 자주 의지, 성격 등 인생의 성공을 위한 조건들은 결코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
책이란 참조할 만한 유용한 사전일 뿐 그 긴 구절들을 완벽하게 머릿속에 집어넣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결혼하여 안정된 상태에서 끊임없이 같은 쳇바퀴를 돌리며 사는 것을 감수하는 이 인간은 좁은 사무실 안에 틀어박혀 단지 적당히 임무를 수행함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군중에게 환상을 품게 할 줄 아는 자는 쉽게 그들의 주인이 되며, 군중을 각성시키려 드는 자는 언제나 그들의 희생양이 된다.

군중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어떤 감정들에 의해 격앙되어 있는지 파악해야 하고,그것을 공유하는 척 해야 하며, 초보적인 결합 방식을 통해 암시적인 이미지들을 제시하면서 그 감정들을 변화시키는 일을 꾀해야 한다.

감정과의 싸움에 있어서 이성적 논법이 얼마나 완벽하게 무력한가를 확인하기 위해 굳이 정신적으로 초보 단계에 있는 존재들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극히 단순한 논리조차 거스르는 종교적 미신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끈질기게 살아남았는지를 되새겨보자.
거의 이천 년 동안 가장 현명한 천재들조차도 종교적 법칙에 굴복하였다.

이성은 철학자들에게 맡겨두고, 그것이 인간사에 어들기를 너무 바라지 말자. 이제껏 모든 문명 형성의 커다란 원동력이었던 명예, 자기희생, 종교적 신앙, 야망, 애국심 등의 감정은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대개는 이성을 무릅쓰고 생겨났던 것이다.

대체로 선동가들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선다. 또, 별로 통찰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데, 그도 그럴 것이 통찰력은 대개 인간을 회의와 무기력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군중은 언제나 강한 의지를 보이며 감동을 불러 일으킬 줄 아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

언제나 군중의 영혼을 지배하는 것은 자유가 아닌 굴종에의 욕구다.

두번째 부류의 선동가들은 꾸준한 의지를 지닌 인물들로서, 비록 확연히 눈에 띄지는 않지만 훨씬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들 가운데서 종교의 진정한 주창자들이나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들을 찾을 수 있는데, 이를테면 성 바오로, 마호메트, 크리스 토퍼 콜럼버스, 레셉스 등이다. 명석하든 아둔하든 중요치 않다.
세상은 언제나 그들의 것이리라. 그들이 소유한 견고한 의지는 매우 희귀하고 강한 능력이어서 무엇이든 꺾을 수 있다. 우리는 아직도 지속적이고 굳건한 의지가 해낼 수 있는 일에 대해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연도, 신도, 인간도, 그 무엇도 그것에 맞설 수 없다.

군중의 정신 속에 어떤 사상이나 신념 - 예를 들어 현대 사회주의 이론 등 -을 주입시키려 할 때 주로 세 가지 명확한 수단을 이용하는데 단언(alfirmation), 반복(repetition), 전염(contagion)이 그것이다. 이들은 천천히 작용하지만 일단 효력이 발생하기만 하면 매우 오래 간다.

정신과 전문의가 정신병에 걸리는 일이 허다함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가 유행이라 부르는 것의 위력 또한 이 모방 욕구에 의해 강화된다.

각 시대마다 스스로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 소수의 개인들이 있으며, 의식 없는 대중은 그들을 따라 한다. 그러나 이들 소수는 사회 통념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행보를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들을 모방하는 일이 너무 어려워지면 그들의 영향력은 미미해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한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 가는 사람들은 대개 그 시대에 아무런 힘도 미치지 못한다.

여론의 성공 여부는 그것의 옳고 그름과는 무관하며, 오직 그것의 위엄에 달려 있다.

자신을 붙잡기로 맹세했던 장군들을 한 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나폴레옹은 충분히 그들을 휘어잡을 수 있었다.

논의의 대상이 되는 위엄은 더 이상 위엄이 아니다. 오랫동안 스스로의 위엄을 지킬 줄 알았던 신과 인간들은 결코 토론을 용납하지 않았다. 군중으로부터 숭앙받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들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아들을 끔찍한 형벌에 처하게 함 으로써 자신의 피조물 중 하나가 저지른 반역에 대해 앙갚음한 어느 신의 전설이 얼마나 소름끼치도록 어처구니없는 것인지, 오랜 세월 동안 눈에 띄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집합체 안에서 지성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무의식적 감정만이 살아 움직일 수 있다.

모든 군중이 그러하듯 배심원들도 감정에는 매우 강하게, 이성적 사유에는 매우 약하게 영향 받는다.

직감에 따라, 또 습관적으로 그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자신이 내뱉는 각각의 문장과 단어가 생성해내는 효과들을 읽어내고 결론을 내린다.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변론에 이미 마음을 기울인 사람들을 구분해내고는 단숨에 그들의 지지를 확고히 한다. 그런 후, 그다지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돌려 왜 그들이 피고인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려 애쓴다. 이는 그의 업무 중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부분인데, 누 군가에게 유죄를 선고하고픈 욕구를 느끼는 이유는 정의감 외에도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미리 작성된 연설문이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지 또한 명 확히 보여준다. 매 순간 생성되는 인상에 따라 사용하는 어휘들도 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연설가는 배심원단의 구성원 모두를 설득할 필요는 없으며, 전체의 의견을 결정할 주동자의 마음만 움직이면 된다. 군중 속에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소수의 개인이 있다.

피고가 배심원단 앞에 왔을 땐, 그가 여러 법관들 - 예심 판사, 대심 재판소의 검사장, 중죄 기소부- 에 의해 이미 죄인으로 간주되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만약 피고인이 배심원단을 거치지 않고 오직 법관들에 의해서만 확정적으로 심판 받는다면, 그는 무죄로 인정될 수 있는 단 하나의 기회조차 잃는 것이리라.

오직 배심원단만이 모든 이에게 평등하며 원칙적으로 맹목적이고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법의 냉혹함을 완화시킬 수 있다.

한 개인이 그리스어를 할 줄 안다거나 수학에 조예 가 깊다고, 혹은 건축가, 수의사, 의사이거나 변호사라고 해서 그가 사회적인 문제에 관해 특별한 혜안을 갖춘 것은 아니다. 미지수들로 가득한 사회 문제 앞에서 모든 무지는 평준화된다.

어느 나라든 당선자들의 평균은 민족정신의 평균치를 드러내며, 이는 세대가 바뀌어도 거의 동일하게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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